이탈리아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과 개선문은 관광지로 유명한 곳입니다. 온라인 예약 및 한국어 가이드가 있으니 참고하셔서 콜로세움의 웅장함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이탈리아 로마의 랜드마크 콜로세움과 개선문 여행

 

웅장한 로마의 콜로세움

콜로세움은 고대 로마의 유적지 가운데 규모가 큰 원형극장입니다. 5만 명 이상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콜로세움은 사실 하루아침에 만들었던 것은 아니고 수 세기 동안 증축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콜로세움 초기에는 모의 해상 전투를 열었던 곳입니다. 하지만 나중으로 갈수록 자극적인 행사들이 주를 이루게 됩니다. 특히나 트라야누스 황제는 다키아 왕국을 정복한 기념으로 행사를 열었고, 이때 11,000마리의 동물과 10,000명의 검투사가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로마 제국이 쇠퇴하자 콜로세움도 유지하지 못하고 결국 1349년 대 지진으로 무너지고, 무너진 돌들은 자신의 건물에 사용하기 위해 사라져 버렸습니다.
콜로세움은 최대 지름 188미터, 최소 156미터입니다. 둘레 527미터에 높이 57미터의 4층으로 된 건물로 1층은 토스카나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의 원기둥이 80개의 아치를 끼고 이어져 있는데 로마 여행에서 꼭 가야 할 여행 코스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그 주변으로 유적을 발굴하고 있답니다.

이탈리아 로마의 랜드마크 콜로세움
이탈리아 로마의 랜드마크 콜로세움

 

콜로세움 온라인 예약

콜로세움 내부를 관람하실 경우에는 가이드의 도움을 받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한국어 가이드투어도 있기 때문에 이왕 로마까지 가셨다면 한국어 설명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탈리아의 뜨거운 태양 아래, 표예매를 위해 끝없이 늘어선 줄 사이에 서있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패스트 트랙으로 입장이 가능하니 온라인 예매를 통해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온라인 예매는 아래 사이트를 통해 도움을 받으세요. 

https://www.klook.com/ko/
검색 창에서 로마 콜로세움 & 포로 로마노 & 팔라티노 언덕 입장권을 치시면 됩니다. 한국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온라인 예매가 가능합니다.
 

로마의 개선문에 서다

콜로세움과 함께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개선문입니다. 콜로세움은 기독교를 박해하는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는데 그 옆에는 기독교 박해를 중단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아니러니였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황제는 기독교를 공인하는 로마 황제로, 312년 로마에 진군할 때 꿈속에서 음성과 십자가 형성을 보게 됩니다. 그 말에 따라 만든 깃발을 앞세워 열세였던 전투에서 승리하자 황제는 더 이상 기독교 박해를 중단시키고 공식 종교로 인정하게 됩니다.
개선문 상단에는 콘스탄티누스의 전투장면들과 업적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벽돌을 쌓고 대리석으로 외장을 마감한 개선문은 세 개의 문으로 이루어진 높이 21미터, 폭 25.7미터의 웅장한 건축물입니다. 

이탈리아 로마 개선문 앞에서
이탈리아 로마 개선문 앞에서

 
사람들 사이를 피해서 감상하고 싶지만 너무도 유명한 로마의 랜드마크인지라  관광객을 피해 사진 찍기란 도저히 어렵습니다. 

이탈리아 로마 개선문
로마 개선문 아래에서

이탈리아 로마에서 고대 유적지를 돌아보는 것은 이탈리아 여행의 묘미입니다. 다만 로마에 대한 기본 상식이 높아야겠지만요.
확실한 것은 다양한 건축 기법과 로마에 대해 알고 간다면 더욱 풍성한 여행이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조각한 미켈란 젤로의 작품 피에타는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로마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피에타 조각

 


피에타 의미

피에타란 이탈리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이지만 성모 마리아가 예수님을 안고 있는 작품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미 성베드로 대성당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피에타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 안에 있는 피에타 조각상

 

피에타 작품이 나오기까지

1499년 미켈란젤로는 24살의 나이에 프랑스 추기경의 의뢰를 받아 그의 무덤을 장식할 목적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주문자가 사망하는 바람에 보수를 제대로 받을 수 없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시신을 안고 있는 모습은 성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했기에 너무도 익숙한 장면이었습니다. 그런 익숙함이 오히려 어려운 작업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기존의 작품들과 다른 모습으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예수님을 무릎에 안고 있는 삼각형 구도를 잡았지만 성모 마리아를 예수님 보다 훨씬 크게 조각해서 부자연스럽지 않게 보이도록 했습니다.

우피지 박물관 피에타
‘피에타’, 피에트로 페루지노, 1494~1495년, 목판에 템페라,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피에트로 페루지노의 피에타 작품을 통해 보면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의 시신을 마리아 혼자서 감싸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마리아의 옷을 이용하여 마리아의 무릎을 크게 보이게 함으로써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리아의 옷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옷으로 감싸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와 현실적인 위협으로 부터 수호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조각상 모습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조각상

 

피에타 작품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이니셜

바티칸에 있는 피에타 조각상에는 미켈란젤로가 그의 이름을 새겨 놓은 유일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성모 마리아의 어깨띠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놓았습니다.

MICHELAGELVS BONAROTVS. FLORENT FACIE BAT(피렌체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제작)

아마도 젊은 시절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은 혈기가 넘쳤나 봅니다. 그 이후로는 그의 이름을 새기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지금은 유리 보호막으로 가려져 있지만 이동하면서 마리아의 왼손가락 4개가 부려져서 1736년 보수해야 했습니다. 1972년에는 정신병자가 망치로 조각을 내리치면서 부서졌고, 그 이후로는 엄격하게 통제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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