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체코 남부 도시 부데요비체 여행을 했습니다. 블타바 강이 합류하는 남보헤미아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정치와 상업의 중심지입니다. 체스키 크룸로프에 가는 길에 여행해도 좋은 도시입니다.

 

체코여행: 지방도시 체스케 부데요비체(Ceske Budejovice) 광장에 서다

 

체코의 지방 도시들도 모두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여 줍니다. 한적한 도시의 광장을 여유롭게 거닐다 보면 중세 시대에 서 있는 느낌에 빠져들곤 합니다.

 

체스케 부데요비체 광장에서

체코 지방 도시를 여행하면 '이렇게 넓은 광장이 있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진 곳 입니다. 물론 더 넓은 곳도 분명 있을 테지만 그냥 그때의 느낌은 그랬습니다.

제가 막 목을 축이고 있던 시점에서는 한 쪽으로는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어고, 반대편으로는 눈부신 태양이 광장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광장이 더 넓어 보였는지도 모릅니다.

체코 삼손의 샘
체스케 부데요비체에 있는 삼손의 샘

 

13세기에 세워진 부데요비체는 넓은 광장에 잠시 주차를 하고 화려한 분수대를 감상하도록 여행객을 맞아 줍니다. 맥주를 좋아하신다면 버드와어저의 고향인 이곳을 방문하실 것을 추천합니다. 집시들과 함께하는 중세 축제도 자주 열리는 활기가 넘치는 도시입니다. 다만 동양인 여행객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래 사이트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https://www.c-budejovice.cz

 

삼손의 샘에서 잠시 사색에 잠겼습니다.

지금은 여행객에게 쉼터가 되어 주는 이곳이 과거에는... 밀려오는 먹구름 처럼 불길한 소식들과 여러 소문들이 서로 얽혀 정보 교환이 이뤄지는 소통의 장소였을 테지... 매일 떠오르는 태양처럼 개인을 위한 삶의 터전이며 탄생과 죽음을 알리는 사적인 공간 이었을 테지...


분수를 바라보며 때로는 고단한 여행객들을 목마름을 달래 주었을 광경을 상상해 보며, 금빛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광장을 가로 질렀습니다.

부데요비체 중세 건물 모습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는 부데요비체에서

체코여행의 즐거움은 지방 어느 도시로 들어가든...
멋진 풍경과 여유로운 사색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동유럽 여행/체코' 카테고리의 글 목록

체코 프라하 여행을 중심으로 해외 여행 정보 안내 및 유럽의 역사와 인문학을 제공하는 블로그

lovepraha.tistory.com

 

폴란드 여행 사진 이야기


체코에서 폴란드까지 이동 했습니다. 폴란드도 한국처럼 아픔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열강의 세력들에 계속해서 침탈당한 폴란드의 분위기는 역사를 대변이라도 하듯이 무표정한 모습과 무채색의 느낌이 들었습니다.

폴란드 크라쿠프의 광장

크라쿠프 광장에는 여러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특산품 호박이 당연 으뜸이었다. 먹는 호박이 아닌 호박 보석을 말합니다. 폴란드 여행 시에 많이들 구입하는 기념품이기도 합니다. 그 호박 속에 당시의  아픔과 눈물, 그리고 서러움도 담겨 있을까요?

저의 질문과는 상관없이 참으로 맑은 햇살이 광장을  평화롭고 내리쬐고 여행객은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폴란드 아이들 사진
폴란드 광장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는 모습


그러다 함께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에게는 서로에 대한 차별이나 계급도 없습니다.

아이들의 모습에는 전혀 어둠도 무채색도 아니었습니다. 폴란드는 역사의 아픔을 딛고 새롭게 거듭난 것 같습니다.

아직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칩니다.


몽골여행 기념품으로 구입한 양모 실내화


몽골 여행 기념으로 실내화를 구매했습니다. 100% 양모이고, 모양도 특이하고 몽골 스타일이라서 구입했습니다. 양모는 계절과 상관 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냥 보면 겨울에만 신어야 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

몽골 방문 기념으로 구매 한 것으로 8천원에서 만원 사이였던 것 같습니다.

신어보니 집에서 실내화로 신으면 나름 재미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몽골 남자들에게 있어서 신발은 중요한 아이템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보니 먼지가 많은 몽골이지만 언제나 그들의 신발은 깨끗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실내화도 필수품입니다.

아무튼 실내화를 사고 보니 바느질도 그렇고 좌우 구분없이 만들어져있습니다. 어찌되었든 겨울에는 필수 아이템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너무도 따뜻하다...

또 미래의 아이가 생기면 신겨 줄려고 같이 사왔습니다. 그것도 모른 조카는 핸드폰 거치대(?)냐고 하더군... 쩝 
또 실제로 핸드폰을 놔봤더니 안으로 쏙 들어가면서 딱 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용하지 않고 잘 보관했다가 아이가 생기면... 그 때 쓰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전주하면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전통 가옥과 한지 그리고 비빔밥이 생각난다.

 

한바탕 전주 세계를 비빈다 - 한지 공예

 

아직도 전통이 살아 숨쉬는 전주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장소 가운데 한 곳 입니다.

이번 전주 방문에서 한지 공예를 볼 수 있었는데 은은하고 온화한 그 색감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한지 공예 작품들
전주 한지 공예 작품

서양인의 눈으로 보면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합니다.

체코의 지방 도시 쿠트나 호라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세들레츠 납골당이 있습니다. 약 40,000명의 사람 뼈로 장식되어 있으며 입장료는 160Kc(성인)이며 온라인 티켓 구매가 가능합니다.
 

체코 지방 도시 쿠트나 호라(Kutna Hora)에서 만나는 세들레츠 납골당

 

체코 세들레츠 납골당

주소 : Zámecká 127, 284 03 Kutná Hora – Sedlec, Czech Republic
운영시간 : 09:00 ~ 18:00
입장료 : 160Kc(성인)
온라인 티켓 : https://tickets.sedlec.info/
 

체코 세들레츠 구글 지도 바로가기

세들레츠 납골당 · Zámecká, 284 03 Kutná Hora, 체코

★★★★★ · 천주교 성당

www.google.co.kr

 
 

세들레츠 납골당 설명

쿠트나 호라 지역은 약 10세기경 조성되었는데 오늘날 야곱교회라고 부르는 사원과 자보지나들 라벰과 슬라브닉 귀족 가문이 자리 잡았던 말린에 있는 정통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들을 그 증거로 들 수 있다.
995년 슬라브닉 전 가문이 몰살당하고 그 통치권이 마르끄바르틱 가문에 주어졌다. 슬라브닉 가문의 일원이었던 미로슬라브가 보헤미아의 여기 세들레츠 지역에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시토 수도회 수도원을 세우게 되었다. 1142년 맨 처음 발트사센의 프랑크 수도원에서 12명의 수도사가 이곳으로 왔다. 세들레츠 인근지역에서 은광이 발견되면서 납골당이 있는 쿠트나 호라가 유명해지게 되었고 성모 마리아 승천교회(1280~1320년에 지어짐)가 세워지면서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그 무렵에 공동묘지가 있는 오늘날의 납골당이 만들어졌다.
1278년 보헤미아 왕 오따까르 2세는 공식사절로 수도원장 헨리를 이스라엘로 보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떠나오면서 골고다 언덕에서 흙 한 줌을 가져다가 세들레츠 수도원 공동묘지에 뿌렸는데 그 결과 보헤미아와 중부유럽 전 지역에 이 사실이 알려져 부유한 사람들이 앞다투며 이곳에 묻히기를 원하였다. 이 매장지는 14세기와 15세기 초 페스트의 만연과 후스전쟁으로 인해 더욱 확장되었다. (1318년 약 3만 명의 사람들이 여기에 매장되었다) 공동묘지는 약 3500평방미터였는데 후에 일부 폐지되었다. 무덤에서 나온 뼈들은 처음에는 수도원 주변에 쌓아 두었다가 후에 안으로 옮겨왔다. 뼈 장식 작업은 1511년 반 장님이었던 시토 수도회 소속 수도사에 의해 이루어졌다.
 

세들레츠 납골당
뼈로 장식된 유서 깊은 납골당 세들레츠는 다양한 영감을 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14세기에 지어진 정통고딕 양식의 납골당 안에 두 개의 채플이 있었다. 그러나 1421년 후스 전쟁 당시 납골당이 불에 타 무너졌버렸다. 오늘날의 납골당은 유명한 이탈리아 건축가 산타니에 의해 1703년 사이에 체코 바로크 양식으로 다시 지어졌다. 다 짓고 난 후 건물의 분위가 이상하여 조금 수정하였는데 서쪽 정면 두 개의 탑 사이에 보호물이 그때 세워졌다. 산티니는 또한 피라미드 위의 왕관이라든가 장식촛대 같은 다른 보충물과 뼈들로 장식하도록 실내를 개조하였다.
납골당 밖으로 나와서 건물을 보면 1709년 M.V.Jackl에 의해 만들어진 성모 마리아 상이 교회당 정면 두 탑 사이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은 납골당 앞에 서 있는 성 얀 네뽀묵의 동상이다. 그것은 네 명의 성인 - 바츨라프, 보이띠예흐, 쁘로꼬프, 폴라리아 - 옆에 있다.

세들레츠 납골당 모습세들레츠 뼈로 장식된 모습
뼈로 장식되어 기괴할 것 같지만 세들레츠 성당의 분위기는 무섭지 않습니다.

1784년 황제 요셉 2세가 수도원을 폐지했고 그 소유권을 귀족 가문 슈바르젠베르그에게 넘겼다. 1870년부터 날짜가 매겨진 오늘날의 뼈 장식물은 체코의 나무 조각가 프란티쉑 린트의 작품이다. (마지막 계단 오른쪽 위에서 그 이름을 볼 수 있다) 원래 뼈 무덤이 6개 있었는데 그중 2개를 그가 없애버렸다. 모든 뼈들을 다 소독한 후에 회칠하여 사용하였다. 프란티쉑 린트는 또한 장식으로 슈발젠 베르그의 갑옷 위에 입는 문장이 든 덧옷을 사용하였다. 사용되지 않은 나머지 뼈들은 다시 매장되었다.
입구에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인류의 구원자 예수라는 뜻인 HIS 가 새겨져 있다. 계단 양 쪽에 마주 보고 두 개의 성찬잔이 있다. 계단을 다 내려가면 오른쪽에 FRANTIŠEK RINT Z ČESKÉ SKALICE - 1870이라고 새겨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체코 조각가 프란티쉑 린트 - 1870) 지하 채플 한 구석에 커다란 뼈 무덤 피라미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뼈들은 서로 묶지 않고 쌓여있다. 인간의 뼈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는 아무도 중요하지 않음을 상징한다. 죽음은 인간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속죄 - 예수의 구원의 작업은 그의 탄생, 십자가에 죽으심 그리고 부활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것은 모든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심으로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명이 주어질 것이다. 의인에게는 하늘의 상급이 주어질 것인데 이것은 나무 왕관으로 상징되고 있다.
지하 교회 중앙에 인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뼈를 이용한 샹들리에가 있다. 샹들리에 밑에는 지하 납골소가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데 거기에는 15명의 부유한 시민의 유품이 보관되어 있다. 납골소 주변에는 바로크 양식의 장식 촛대들이 있다.
제단 벽의 움푹 들어간 곳에 성체안치기를 발견할 수 있다. 지하 채플 왼편에 슈바르젠베르그 가문 소유의 문장이 든 덧옷을 볼 수 있다. 이것은 1591년 전투에서 슈바르젠베르가가 터어키에 승리한 것을 상징한다. 장식장 안에는 후스전쟁의 용사들의 해골을 전시해놓고 있다.
이 납골당은 약 40,000명의 보통 사람들의 무덤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뼈 장식 작업은 영원성의 가치와 그 진상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우리 이웃을 향한 책임을 다 했을 때에만 우리를 용서하신다. 용서의 계율은 우리가 죽을 때 적용 될 것이다.
 

티켓 예약 및 자세한 정보는 아래 공식 사이트를 방문하세요.

Sedlec

Římskokatolická farnost Kutná Hora - Sedlec | správce světového dědictví UNESCO

www.sedlec.info

 

+ Recent posts